그림을 그려야 사람이 성숙해지는 이유(그림 그리기 취미)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 내 앞에 벌어지는 일들과 관계에 대해서 여유를 가지며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큰 특징입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의연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림 그리기가 사람을 성숙해지도록 돕는다는 사실 아시나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예술가들만의 취미가 아닙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알아가고 삶의 성숙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관심하고 관찰하고 느끼기

그림을 잘 그리는 거장들은 공통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다양한 기술, 기법보다도 중요한 것이 대상을 향한 ‘관심’과 ‘관찰’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그리라고 말합니다. 저의 경우는 자동차, 카메라, 오토바이, 밀리터리 등 기계를 좋아하는데요. 꽃을 그리는 것보다 복잡한 기계를 그릴 때 더 강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저 그 기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관찰합니다.

‘아, 이 부분의 스위치는 이렇게 생겼구나’

‘이 연결부분은 이렇게 돌아가는 거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유심히 관찰하고 느낀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죠. 내 종이에 내 펜으로 그 기계를 그리면 내 것이 된 것 같거든요. 롤렉스 시계를 종이에 사실적으로 그렸을 때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롤렉스보다 더 빛나고 멋있는 롤렉스 시계를 가진 기분이 듭니다.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기, 물체와의 거리에 따라 각도를 다르게 해서 그리는 등의 투시도법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소실점, 원근법 이야기도 많이 나오죠. 하지만 그런 기법보다 중요한 것은 그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풍경, 사람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위 그림 감각, 직관력이죠.

모든 것이 투시도법에 맞게 완벽히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비뚤어지고 선이 흔들리는 그림의 모양이 ‘느낌있다’, ‘개성있다’라는 호평을 들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그 물체와 사람, 풍경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관심하고 관찰한 사람의 그림은 그대로 그 마음이 묻어나오는 법이니까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각도와 거리로 그려보기

대상을 관찰하다보면 똑같은 대상인데도 내가 바라보는 각도와 떨어진 거리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내 앞에 있는 커피잔을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손잡이가 보이게 보는 것과 손잡이를 뒤로 가게 해서 보는 것 역시 다릅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느껴본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관찰하다보면 한 쪽 면만 볼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래쪽, 반대편도 궁금해집니다. 그리고는 내가 생각한 대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림에 대한 기법들을 공부하기 이전에 이렇게 관찰하고 그대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그림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인생을 사는 것도 관찰과 관심의 연속이다

인생을 살다보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많은 사람들과도 관계로 엮이게 됩니다. 저는 최근 5년 동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었습니다. 소중한 친구를 하늘로 보냈었고 소중한 사람이 헤어나오기 힘든 긴 터널을 지날 때 옆에 버티고 있어주었습니다. 당장 내일 죽어도 모를만큼의 건강 악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때 내가 느끼던 절망감, 좌절감, 슬픔은 마치 어제의 일과 같습니다.

기쁜 일들도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친구에게 새 생명이 찾아온 일, 끈질긴 노력으로 내 건강이 다시 회복된 일, 지옥같던 인간관계가 조금은 편해진 일 등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림을 그리며 그 모든 희노애락을 다시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정말 기특했습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내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지옥같은 일들을 마주할 때는 내 인생이 저주받았는지 의심했지만, 그 일들을 되짚어보고 다시 발전하려는 내 모습에 감동을 느꼈죠.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든지 우리는 그 일들에 대해 함부로 빠르게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다양한 각도로 보면, 거리에서 보면 그 일들은 다르게 보이거든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나는 어떤 시선과 각도로 내게 닥치는 일들과 사람, 물건을 바라보는 것일까요? 지금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각도와 거리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늙어버리고 병든 사람은 참으로 고집스러운 시선만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일과 사람을 한쪽 면으로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으로도 봐야하고 아래에서 혹은 위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일과 사람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요? 아마 다를겁니다.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내 주변을 관찰하는 일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그리지않고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성숙함을 띄게 될 것입니다.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ft.김정기 작가)